직장인보고서
법은 직원 편인데, 결과는 왜 늘 회사 편일까요? - 독일 회사 인사팀이 절대 먼저 알려주지 않는 것들
BY gupp2025-12-16 13:31:40
81310

독일은 오래전부터 ‘근로자 보호가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고 요건은 까다롭고, 병가는 법적으로 보장되며, 연차 휴가 또한 명확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독일에 취업한 많은 한국인 직장인들은 “법만 따르면 안전하다”라는 인식을 갖고 출발합니다.

 

그러나 실제 독일에서 몇 년 이상 근무한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인식은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도는 좋은데, 정작 나는 손해 본 느낌이 든다”는 말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괴리는 어디에서 발생할까요? 그 핵심에는 독일 회사 인사팀(HR)의 역할과 구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 Dragana Gordic / shutterstock

 

 

인사팀은직원 편이 아니라회사 입장을 대변하는 조직입니다

 

먼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전제가 있습니다. 독일 회사의 인사팀은 한국에서 흔히 기대하는 ‘직원 보호 창구’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인사팀은 법적으로도, 조직적으로도 회사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부서입니다.

 

물론 인사팀이 직원에게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직원에게 유리한 정보를 먼저, 적극적으로, 충분히 설명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독일 노동법이라는 강력한 제도는 직원 스스로 사용하지 않는 상태로 방치되기 쉽습니다.

 

 

 

연차 휴가는 자동으로 사라질까요?

 

많은 독일 회사에서 연말이 다가오면 인사팀은 비슷한 안내를 합니다. 연차는 일정 기한 내에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된다는 설명입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를 회사 규정으로 받아들이고, 남은 연차를 포기합니다. 그러나 독일 및 유럽사법재판소의 판례는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연차가 소멸되기 위해서는 회사가 직원에게 남은 연차 일수, 연차 사용 기한을 명확하고 인지 가능한 방식으로 안내했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면, 연차는 자동으로 소멸되지 않을 수 있으며, 퇴사 시 미사용 연차에 대한 금전 보상 청구도 가능해집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팀이 이러한 전제를 먼저 설명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결과적으로 연차는 “규정상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진 것”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가 중 해고는 가능하지만, 항상 유효한 것은 아닙니다

 

독일에서는 병가 중 해고가 법적으로 전면 금지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인사팀은 흔히 “병가 중이라도 해고는 가능합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이 설명은 사실이지만, 완벽한 설명은 아닙니다.

 

특히 장기 병가의 경우, 회사는 해고에 앞서 직원의 복귀 가능성, 업무 조정, 재배치 등을 검토하는 “직무 복귀 지원 절차(BEM)”를 거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절차가 누락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해고는 노동법원에서 무효로 판단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 한국인 직장인들은 체류 자격 문제와 연결될 것을 우려해 해고 통보를 쉽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지만, 병가 중 해고는 이민법과는 별개의 노동법 문제입니다. 이 지점에서의 대응 여부가 이후 결과를 크게 갈라놓습니다.

 

 

 

수습기간이 끝났다고 해서 자동으로 보호받는 것은 아닙니다

 

수습기간(Probezeit)이 종료되면 많은 직장인들이 “이제는 해고 보호(Kündigungsschutz)가 적용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독일의 일반적인 해고 보호는 단순히 수습기간 종료만으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근속 기간 6개월 초과

직원 수 10명 초과 사업장

 

이 두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비로소 일반적인 해고 보호가 적용됩니다.

 

★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독일 지사, 가족기업에서 근무하는 경우, 수습기간이 끝났음에도 법적으로는 여전히 취약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이 부분 역시 인사팀이 먼저 상세히 설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근무시간 조정은 전적으로 회사 재량일까요?

 

 


ⓒ Quality Stock Arts / shutterstock

 

 

육아, 건강, 학업 등의 이유로 근무시간 단축이나 조정을 요청할 때 인사팀은 “회사 재량 사항(im Ermessen des Arbeitgebers)”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나 독일 노동법은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직원에게 근무시간 조정을 요청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이를 거절할 수 있지만, 그 거절에는 명확한 운영상 사유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인력 공백, 업무 연속성 훼손, 대체 인력 확보 불가능 등의 구체적인 사유를 들어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요청 방식입니다. 구두로 한 요청은 법적으로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이메일이나 서면으로 요청한 경우에는 요청 시점, 요청 내용, 회사의 답변 여부와 그 논리가 모두 기록으로 남습니다. 이 차이 때문에 실제 분쟁 상황에서는 “요청한 적이 없다”는 회사의 주장과 “요청했지만 합당한 이유 없이 거절당했다”는 직원의 주장이 서면 요청 여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결국 독일에서는 “말로 했습니다”보다 “메일로 남아 있습니다”가 법적으로는 훨씬 강한 의미를 가집니다.

 

 

 

 

급여 협상에서 인사팀이 절대 말하지 않는 부분

 

급여 인상이나 연봉 조정을 요청하면 인사팀은 흔히 “회사 내규상 어렵다”고 답합니다. 그러나 많은 독일 기업에는 공식 급여 체계 외에도 직무 범위, 시장 상황, 대체 가능성에 따른 예외 적용의 여지가 존재합니다.

 

다만 이러한 예외는 직원이 먼저 근거를 제시했을 때만 논의 테이블에 오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인사팀이 먼저 이를 언급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결국 급여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가능한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가능한가”를 묻는 접근방식이 필요합니다.

 

★ 업무 범위의 변화, 책임 증가, 시장 급여 수준과의 차이처럼 구체적인 근거가 제시되어야 ‘협상의 출발점’이 됩니다.

 

 

 

외국인 직원에게 행정은 끝까지개인 책임으로 남습니다

 

체류 자격, 취업 허가, 외국인청과 관련된 행정 문제에서 회사 인사팀은 흔히 “개인 사안”이라는 표현으로 거리를 둡니다. 형식적으로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로 외국인청이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자료는 회사에서 작성한 근로계약서와 급여 정보입니다.

 

직무명, 근무시간, 연봉이 ‘근로계약서/급여명세서/행정 서류’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날 경우, 그로 인한 설명과 책임은 대부분 직원 개인에게 돌아옵니다. 이 구조에서 인사팀은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까지만 관여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부담은 직원이 떠안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점 역시, 인사팀이 먼저 상세히 설명해 주는 영역은 아닙니다.

 

 

 

독일에서의 직장 생활은알고 있는 만큼만 안전합니다

 

독일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장인이 반복해서 손해를 보는 이유는 권리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제도와 권리는 충분히 존재합니다. 다만 그 권리는 자동으로 작동하지도 않고, 누군가가 대신 챙겨주지도 않습니다.

 

인사팀의 설명은 출발점일 뿐이며, 결론은 언제나 직원 본인이 확인해야 합니다. 스스로 인지하고, 기록하고, 정말 필요할 때만 차분하게 꺼내 쓰는 태도. 그것이 독일에서의 직장 생활을 불필요한 소모전 없이 이어가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 작성: 오이스타
  • ⓒ 구텐탁피플(https://gutentagpeopl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취업·구인구직·스카웃을 한 번에, 독일 한인 취업 플랫폼 구텐탁 피플
  • 기사에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거나, 추가로 기사로 작성됐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메일로 문의주세요 (문의 메일: info@gutentagkorea.com)
댓글 0 보기
목록보기
구피매거진